수필 창작

친구 생각

지명이 2019. 6. 17. 08:43

친구 생각

김지명   

 

  고향 친구들이다. 서로 다른 도시로 흩어져 직업을 가졌기에 한동안은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고향 친구라면 혈육은 아니더라도 남매 못지않은 정을 가졌다. 모임이 없으면 축하해 달라는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향 친구라도 자주 만나지 못한 것은 생활이 어려운 시절이라 생업에 열정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연 반복하면서 자녀가 출가할 시기가 되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할 땐 모두 고향을 떠나 각자의 삶에 바빠 시간이 없었다. 열정을 쏟아 일할 나이였기 때문에 만남은 거의 없었다. 사연리 곡연 마을은 김씨의 집성촌이므로 모두 집안이 아니면 일가였다. 명절에 고향에 가면 정현을 가끔 만난다. 이웃사촌이라 명절에 큰집에 제사를 모시기 위해 찾아가면 이웃집에서 음성을 듣고 밖으로 나와 반갑게 반겨준다. 친구의 자녀가 혼례식을 한다고 이야기한다면 고향 친구의 현주소를 묻는다.

  모임이 없으니 친구 간의 연락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사나 우안에는 반드시 참석하도록 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직장에서 부장이라 마음의 여유를 보이면서 정현의 제의에 기꺼이 승낙했다. 임시 모집을 곧바로 하여 일곱 명이 한 자리에 둘러앉았다. 모임의 윤곽을 잡고 처음 만나는 날을 모두에게 알렸다. 며칠 후 마을 친구 열일곱 명이 한자리에서 모두가 동의했다.

  우안이나 경사에 반드시 참석한다는 명목을 주목적으로 결승하고 회칙까지 만들었다. 대구에서 고향으로 찾아온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며 얼싸안고 기뻐한다. 고향 친구가 아니라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면서 자주 만나자며 환한 웃음을 보인다. 한 지역민이 아니고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으니 분기마다 만나더라도 참석률이 저조했다. 분기마다 모임은 반복하지만, 회사 일이 바빠 참석하지 못한 친구가 많았다.

  모두가 모이면 아동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지준과 정현은 이웃에서 동고동락을 같이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많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마을 친구들은 소를 몰고 뒷산으로 올라 계곡으로 가기 위해 산마루에 올랐다. 처음에는 직접 소를 몰고 며칠간 다니다가 어느 날부터 산마루에서 고삐를 뿔에 감아 자유로운 행동으로 계곡을 향해 가라고 보냈다. 스무 마리가 넘는 소를 약 3km 이상 떨어진 계곡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어 먹도록 풀어놓았다.

  아동 시절엔 학교에 다니며 소를 관리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엔 공부는 뒷전이고 몇몇 친구와 함께 자유롭게 풀어놓은 소를 찾으려고 먼저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에는 낮은 폭포아래 깊은 곳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놀이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억새의 이파리를 접어서 열십자로 단단하게 만들어 중앙에 나무 꼬챙이로 끼워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돌을 양쪽으로 놓고 물레방아를 걸쳐 물살에 의해 돌아가게 설치했다. 친구들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니 재미있다며 주변에 돌을 쌓아 방아집이라고 한다. 그 뒤쪽으로 넓은 공간에 나뭇가지를 꺾어 달구지도 만들어 놓았다. 또 다른 친구는 개울에 댐을 만든다고 하면서 많은 물이 고이도록 큰 돌과 자갈로 흐르는 물을 막아놓고 튼튼하게 둑을 쌓았다. 친구들의 개성은 다 달랐다.

  고향 친구를 생각하면 성인이 되어도 아동 시절의 버릇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옷을 다 적셔가면서 군소리 없이 부지런히 놀이에 참여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구경만 하면서 지시하는 친구도 있다. 직업을 보면 아동 시절에 다양하게 행동하던 그들의 모습이 성장하여도 그대로다. 정현과 지준을 보면 그때 그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하루가 모자라도록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저녁노을은 붉게 물들었다. 정현은 머리가 좋은 만큼 손재주도 다양하여 다른 친구가 생각지 못한 놀이기구를 만들어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에 빠져들게 했다. 지준이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건설에 머리를 돌려 개울에 댐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그러던 지준은 건축기사 자격을 갖고 외국에서 책임자로 파견하여 직원들을 지시하기도 했다.

  소들은 늦으면 늦는 데로 꼬마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깊은 계곡에는 소를 괴롭히는 동물이 없어 소들은 환경이 좋아 천국 같은 놀이터였다. 소들도 세상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가던 버릇이 있어 항시 모이던 장소에 모였다. 묘지 언저리 넓은 공터는 소들의 대기실 같은 장소였다. 누워있는 누렁이도 있고 새끼 젖을 먹는 소, 서서 되새김하는 소 등 다양한 모습들이 아주 평화롭게 보인다. 이런 모습은 시골이 아니면 어디서라도 구경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어느 날 개울에서 놀이에 빠져 혼신을 잃고 있었다. 형과 친구들은 먼저 소몰이로 떼를 지어 집으로 나간다. 놀이 기구를 그대로 팽개쳐놓고 개울에서 오솔길로 뛰어나와 뒤따라 붙었다. 형은 산에 일찍 같다면서 어디서 놀다가 이제야 나타나는지 의아하다며 묻기도 한다. 맑고 깊은 물에서 목욕하면서 헤엄치는 연습 했다고 말을 돌렸다. 형은 요즘은 가제가 보이지 않더냐 하면서 묻기도 한다. 내일은 개교기념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으니 가재 잡자고 제의한다. 친구들은 좋다고 했다.

  형은 중학생이지만, 동생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정현과 나는 아홉 살이지만, 지준은 여덟 살이었다. 정현에게는 된장과 고추 몇 개, 지준은 쌀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내게는 항구와 채소를 여러 가지 가져오라고 명한다. 또 다른 친구에게는 숟가락과 양재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동생들이 다 가져오면 형은 무엇을 가져오는지 물었다. 형은 빙그레 웃으며 입만 가져오면 좋겠지마는 가재를 잡아 끓여 먹을 냄비를 가져오겠다고 한다.

  열 살도 안 되는 소몰이 친구들은 계곡으로 가기 위해 모두 산마루에 모였다. 모두가 충분히 준비하였기에 형은 빙그레 웃으며 앞장서서 계곡으로 인솔한다. 친구들은 개울에 흩어져 가재를 잡았다. 돌을 들고 숨어있는 가재를 잡아 한곳에 모았다. 큰 돌 아래에 손을 넣었을 때 가재가 인지를 물었다. 놀라서 손을 뺐을 때 가재가 따라 나왔다. 이러하듯 놀이에 빠져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즐거운 시간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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